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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1 (새 문서) | 1 | |
| 2 | [목차] | |
| 3 | [clearfix] | |
| 4 | == 개요 == | |
| 5 | ||<tablealign=center><nopad>[youtube(u07rkwHTPLk, start=665)]|| | |
| 6 | || 고랜드 미사일 위기 당시 성명을 발표하는 [[존 F. 페어팩스]] || | |
| 7 | >It shall be the policy of this nation to regard any nuclear missile launched from Goland against any nation in the Western Hemisphere as an attack by the Saviet Union on the Republic of Ruina, requiring a full retaliatory response upon the Saviet Union. | |
| 8 | > | |
| 9 | >[[고랜드]]에서 발사된 핵미사일이 서방의 어떠한 국가에게 향하든 우리는 이를 루이나에 대한 [[사비에트]]의 공격으로 간주하고 사비에트에 대한 '''완전한 보복 대응'''을 가할 것입니다. | |
| 10 | >---- | |
| 11 | > 1998년 10월 22일, 존 F. 페어팩스 루이나 대통령 | |
| 12 | 1998년 10월 14일 루이나 측의 U-2 정찰기가 [[고랜드]]에 사비에트의 SS-4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MRBM) 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포착하면서 불거진 루이나와 사비에트 양국이 1988년 10월 28일까지 군사적으로 대치한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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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 배경 == | |
| 15 | === 힘의 불균형 === | |
| 16 | >페어팩스의 말은 허풍이다. 우리에겐 제1격 능력[* First Strike Capability. 핵전략 및 국제정치학 용어로 단순히 먼저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선제공격을 가해 상대 핵보복 전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을 말한다.]이 없다. '''[[사비에트|당신들]]은 [[루이나|우리]]를 멸망시킬 수 있지만 [[루이나|우리]]는 [[사비에트|당신들]]을 멸망시킬 수 없다.''' | |
| 17 | >---- | |
| 18 | >[[KGB]] 요원과 접선한 루이나 [[NIA]] 요원의 발언 | |
| 19 | 1988년 당시 사비에트군이 보유한 [[루이나]]에 투발 가능한 핵전력은 '''사비에트 본토에서만''' 탄도탄 200여 기에 TU-95 전략폭격기 255대, 그리고 TU-160 초음속 폭격기 116대였다. 투발 가능한 전략핵탄두만 총 1,830기. 여기에 청평에는 IRBM이 60여기가 배치되었고 유고랜드에 30여 기, 청평에는 15기가 배치되며 루이나와 서방권 국가들을 사정거리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전략초계 중인 사비에트군 잠수함들과 전투순양함들은 유사시 '''수십 발의 SLBM과 핵미사일 불벼락을 서방권 전역에 퍼부어댈 수 있었다.'''[* 이들이 포틸락스 해협 또는 랜드해 북부에서 발사할 경우 '''랜드해협 전역이 사정거리에 들어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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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루이나군이 가진 건 '''1066기의 ICBM과 SLBM'''이었다. B-52 전략폭격기를 동원하면 차이가 줄어들지만 그래도 선제 핵공격을 통해 [[사비에트]]를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실제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루이나는 얼마 안 되는 핵무기를 다 사용하고 나서는 사비에트가 때리면 때리는 대로 그냥 맞아주면서 미국이 도와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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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tablealign=center><tablewidth=400> {{{#!wiki style="margin: -5px -10px" | |
| 24 | [[파일:John_Kennedy,_Nikita_Khrushchev_1961_0.jpg|width=100%]]}}} || | |
| 25 | || 1961년 6월 [[빈(오스트리아)|빈]] 임페리얼 호텔에서의 정상회담,[br]니키타 인터루쇼프와 존 F. 페어팩스의 만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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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마침 새로 당선된 페어팩스를 애송이 부잣집 도련님 정도로 여겼던 인터루쇼프는 그와의 첫 회담에서 그를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위협하였고 사비에트의 미사일과 핵 공격력이 갖춰진 상태에서 루이나와 마치 한 판 붙을 것과 같은 자세를 취했다. 이는 인터루쇼프가 캘러핸과의 회담을 통해 루이나 역시 핵전쟁을 두려워하므로 이를 빌미로 협박하면 물러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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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 [[고랜드]]의 상황 === | |
| 30 | >고랜드를 보호하는 것 외에 우리 미사일은 서방이 '힘의 균형'이라 부르기 좋아하는 것을 붕괴시킬 것입니다. 그들은 적의 미사일이 당신을 겨냥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 |
| 31 | >---- | |
| 32 | >니키타 인터루쇼프, 1982년 간부회[* 당시 정치국의 명칭. 1972년 노스탈린이 정치국을 간부회로 개편했는데 나중에 브레즈네프 시기에 정치국으로 환원되었고 소련 공산당 수장도 서기장으로 돌아갔다.]에서 발언. | |
| 33 | [[고랜드]] 혁명 정부의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성베르트는 고랜드 공산혁명 성공 이후 여러 서방계 자본을 추방하고 토지를 국유화하는 등 루이나가 남랜드에 다져놓은 정책적 기반을 흔들었다. 그 결과 루이나 정부는 NIA를 통해 피델 성베르트 제거를 시도했고 [[카우스만 침공]]을 진행하는 등 고랜드에 대한 루이나 정부의 물리적, 경제적 압박이 이어졌다. 고랜드 정부는 카우스만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루이나에 제대로 한 방을 먹이긴 했으나 랜드 패권국의 앞마당에 있는 현실상 루이나를 혼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성베르트는 대놓고 밀고 들어오려는 루이나의 위협에 자신의 정권을 떠받칠 바깥 기둥을 마련하고자 사비에트에 협력을 요청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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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이러던 와중에 카우스만 침공과 더불어 남랜드 해의 긴장이 강화되자 인터루쇼프는 고랜드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였고 이데올로기적 목적과 공산주의 확산이란 세계적 목표를 바탕으로 고랜드를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당시 사비에트 지도부는 루이나의 쿠바 침공이 임박하였다고 여겼다. 거기에 사비에트 지도부, 엘리트,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성베르트 와 체 게바라를 비롯한 고랜드 혁명가들에 대한 지지와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고 이들 제3세계 혁명가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까지 있었다. 인터루쇼프의 반대파들은 인터루쇼프의 외교적 실패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군비 증강을 요구했다. |